부모, 특히 엄마는 아이가 교육기관에서 돌아오는 방과 후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오늘 뭐 배웠어?’ 또는 ‘오늘 뭐 하고 놀았어?’라고 말이다. 과연 엄마들은 아이의 입에서 어떤 대답을 듣기 원하는 것일까? 무척 궁금하다.
혹시 아이가 ‘응! 나 오늘 무척 바빴어요~’라고 대답한다면 엄마는 이런 아이의 대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지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의 행사로 인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필자는 이러한 아이의 대답에 대해서 이 아이가 분명 유능한 아이일 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공부를 잘 하거나, 무언가 특출한 능력을 지닌 아이에 대해 유능한 아이일 것이라고 여겼던 인식들은 이미 구시대적인 정의라 할 수 있으며, 현대적 의미에서의 유능한 아이는 ‘친구와 잘 노는 아이, 친구들을 잘 포용하고 공감능력이 탁월한 아이,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인기가 많은 아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유능한 아이는 하루의 일과 속에서 다양한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또래 간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고 즐겁게 하며 마음과 생각을 나누느라 무척이나 바빴을 것이라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 유럽의 한 시리아인 난민촌을 취재한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다. 난민들 중 일부는 거리로 뛰쳐나와 기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몸짓을 보여주었으며, 처참한 난민촌의 실상이 보이는 가운데 수많은 난민들의 무표정과 함께 궁핍함이 고스란히 담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것은 몇몇 아이들이 비록 옷은 제대로 갖춰 입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어른들의 뒤편에서 자신들만의 언어가 담긴 노래를 흥얼거리는 가운데 돌멩이 몇 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깔깔대며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즐겁게 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불행’이라는 의미와 상반되는 나름의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갈등을 극복하게 하는 힘,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 그리고 현재 느끼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잊게 하고 인간 본성에 충실하게 회복시키는 힘,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놀이 속에 존재하는 놀라운 파워(power)가 아닐까 생각한다.
잘 노는 아이가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이미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버린 난민촌의 아이들에게도 행복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고, 아이들에게서 그 놀이성을 빼앗지만 않는다면 아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는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웃음이 난다. 집 앞마당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그리고 뒷동산과 들판에서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시작된 놀이는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도 끝나지 않았으며, 집에 돌아갈 줄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은 채 철없이 맘껏 놀았던 기억 때문이다. 놀이를 하는 가운데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골목대장 노릇도 해보고, 엄마가 되어 밥도 지어보고, 그리고 여자애들이 하는 고무줄 놀이를 끊으면서 짓궂게 방해를 하던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을 혼내주겠다며 마치 육상선수라도 된 듯 온 동네를 휘젓고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며 한참을 씩씩대던 그때, 나는 내가 세상의 최고인 줄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어릴 적 놀이들을 추억해 볼 때면 항상 입가에 미소를 짓는 나 자신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자알~~ 놀아본 경험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나 보다.
그것은 내가 경험했던 성취감이었고 자유로움이었으며 나 혼자만이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의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소통능력을 발휘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흐뭇한 추억거리가 되어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되어 오고 있다. 또한 가끔 삶이 힘들고 나를 좌절하게 하여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게 하고 긍정의 마인드를 되찾게 해주는 놀이의 힘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의미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내 삶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영유아놀이지도』를 출간하면서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놀이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또한 내 안에 잊혀져 있던 놀이근성을 다시 솟구치게 하였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는 어떻게 설득력 있게 책의 내용을 서술할까에만 집중하던 나 자신을 어릴 적 초심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반성하게 만들었으며, 내 안에 존재하는 즐거웠던 놀이들을 다시금 기억하고 재생해 보는 가운데 놀이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살피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이 현장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삶에 있어서 놀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