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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찾아 부모교육 선진국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숨 가쁘게 달려왔다. 농경사회에서 1·2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훑으며 지나, 드디어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했나 하고 한숨 돌리려 하니,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매스컴에서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산업화의 길을 걸었던 선진국들은 국가가 가족구성원들의 돌봄역할까지도 담당해 왔던 것에 비해 산업화가 지나치게 빨리 진행된 대한민국에서는 해결해야 할 너무 많은 문제들이 생겨버렸다.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했으니 이제는 부양받아야지 했더니, 자기들 살기도 힘들다며 오히려 늙은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형편의 자식들, ‘N포 세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젊은이들, ‘독박육아’에 지쳐가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엄마들, 친부모에게 학대당하다 죽어간 아이들, 부모와 자식들을 동시에 지치게 하면서도 중단하기 쉽지 않은 사교육의 범람…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의식구조를 다루게 될 때 누구나 서슴없이 가장 먼저 드는 것이 가족주의적 특성이다. 가족을 대단히 중시하는 한국인은 사회를 거대한 하나의 가족으로 의식하고 가족생활의 행동양식을 사회생활로 확대 연장시키기 때문에, 식당에서 서빙하는 초면의 여인을 우리는 쉽게 “이모”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아빠의 직장 동료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케일이 큰 민족인가 보다. 서슴없이 가족의 울타리를 무한정 확장시키니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의 단위가 턱없이 작아져서 핵가족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의 핵가족들은 그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가?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서 오후 강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귀가하며 늦둥이들(공부하느라 늦게 얻은 아이들) 걱정에 저녁 찬거리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설 때에 종종 스며들었던 감정들이 기억난다. 다른 도시까지 가서 여러 시간 강의하고 지친 몸을 시외버스 안에 던지다시피 하면 어느새 두 눈은 감겨버리고 도착지에 가서야 겨우 정신 차리면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설 때쯤엔 각 세대들은 조명을 켜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불이 켜진 구멍들이 보이는 아파트 건물의 속삭임이 나에게 들리는 듯하다. “703호 아이가 부모에게 걸핏하면 매를 맞는데, 이웃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801호 부모는 맞벌이 하느라 저녁 늦게 귀가하는데, 중학생인 그 집 아들은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 버렸어요”…
늦둥이들이 좀 더 어렸을 적에 비하면 나의 개인적인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진 시점이었다. 명색이 “부모교육학 박사”인 내가 친구나 친척 한 명도 없는 지방 도시에서 늙다리 엄마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자리를 잡은 남편을 중심으로 모든 상황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오랜 외국생활로부터 돌아온 우리들에게는 양쪽 부모님들의 ‘기다림’이 대기 중이었다. “손자가 너무 보고 싶어서”, “시골에서 혼자살기 외로우니까”, “딸도 자식이니까”… 나이가 많아서 젊은 엄마들 사이에 쉽게 끼지도 못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 시간강사로 장거리를 뛰다가 주말이면 더 장거리를 뛰어 시어머님이 계시는 경상도 시골 마을로, 친정아버지가 퇴임 후에 새로 마련하신 충청도 시골의 전원주택으로 부지런히도 다녔다. 아이들에게 대가족의 큰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몸을 돌볼 새도 없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입술에 물집을 달고 살 정도였다.
‘내가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내가 쓰러져버릴 것 같을 때면, “내가 지금 독일이나 프랑스에 살고 있다면, 나의 삶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꾸역꾸역 뇌리로 파고들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여러 가지 복지혜택은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과연 혜택을 누리며 부모역할하기가 수월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요즈음 우리 사회는 부쩍 다른 나라 부모들의 양육방법에 관심을 많이 표현한다. 특히 북유럽, 서유럽 쪽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표현된다. 우리 자신들의 양육방법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2002년 한 해를 미국에서 보내는 동안 교환교수였던 남편은 “그때가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지금까지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내가 오롯이 전업주부로 살았던 유일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도시의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었던 아들의 초등학교, 딸의 유아원, 남편의 연구소가 있는 대학에 식구들을 차례로 데려다주고 오면 곧바로 오전 자원봉사. 우리나라의 전통 심신수련법을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 부인들에게 그리고 때로는 미국인들에게 지도하는 일은 그들에게 건강과 정서적 위안을 위해서 좋을 뿐만 아니라 지도하는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기 때문에 귀국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12시쯤 딸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여, 오후 3시쯤 아들 학교로 가서 아들을 찾아오면, 보통 엄마들처럼 아들의 숙제를 살피고…
딸이 오빠랑 같은 학교에 있는 유치원으로 옮기는 연령이 되면서부터는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학교나 유치원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 프로그램과 학부모 자원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였고, 복지단체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대여 프로그램 덕분에 14개월의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아이들 장난감을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전문적인 전업주부로 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19년의 세월 동안 한국, 독일,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며 ‘아이 잘 키우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자기 아이만 잘 키우는 것에 만족할 수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2003년 2월 말에 미국에서 돌아온 우리 가족들은 다시 엄마와 아내를 세상에 빼앗기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찾기 위한 7년간의 시도를 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교수시장’에 대한 소문을 고루고루 직접 다 체험하였고, 그렇다고 어린 늦둥이들을 키우며 주말부부로 살려고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보수는 형편없었지만, 돈을 덜 쓰면 되니까.
2004년 초, 드디어 천안에 ‘천안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 천안)’라는 부모교육 전문 시민단체를 설립하였다. 연구, 강의, 육아, 살림 밖에 모르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내가 1994년부터 ‘부모교육위원’으로서 동참했던 ‘지역사회교육운동’을 실천하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KACE)’의 천안지부인 것이다.
2003년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포함해 16년째에 접어드는 금년에 나는 독자들에게 함께 시간여행을 하자고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무척 가슴이 뛰고 있다.
1988년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부모교육’이라는 주제의 박사준비과정 논문을 발표하자, 지도교수였던 르불 교수님이 “당신은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을 테니 박사과정에서는 세계를 비교해 봅시다”라고 욕심을 표현했다. 은근히 기대를 하던 르불 교수님은 무정하게도 뇌 이상으로 수술을 받다가 결국 돌아가시고, 난 1993년에 ‘부모교육: 세계의 경험들. 한국에의 전망’이라는 주제의 박사학위논문을 에르니 교수님의 지도하에 발표하였다. 심사위원 중 한 교수는 “우리가 못한 일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당신이 해주어서 고맙습니다”라며,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국경을 무수히 넘나들고 부모교육 국제회의에도 참석한 나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에르니 교수님 부부는 나에게 부모님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고, 1996년에는 에르니 교수님과 두 권의 공저를 프랑스에서 출판하였다.
• ‘부모교육과 가족교육의 경험들: 프랑스-독일-벨기에-북아메리카-한국’
• ‘부모됨: 교육을 위한 행보’
이러한 연구 과정들의 시간이 벌써 지난 세기에 속해버리니, 그 이후에 몇 차례의 현장 방문을 통해 변화과정을 지켜보며, ‘KACE 천안’의 연간사업계획에 참고하며 살다 보니 벌써 60대에 접어들었다.
내가 독자들에게 제안할 ‘부모교육 선진국으로의 시간여행’의 목적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각 시대가 요구하는 부모교육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응답해 왔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독일의 사회교육기관 중의 하나인 부모교육기관의 변천사를 보면, 20세기 초에는 ‘어머니 학교’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킴으로써 건강한 가정생활을 장려했고, 1970년대부터는 ‘가족교육기관’이라는 명칭 아래 가족구성원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가족문화의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들이 있어서 많은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서유럽 부모교육 운동의 탄탄한 초석을 마련한 프랑스는,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예전의 강력한 부권과 인간으로서의 아동의 자율성의 개념 사이에서 화해의 노력을 표현했고,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교육을 시키는 전통적인 방법과 인본주의적 교육을 시키는 능동적인 방법들 사이에서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종족이나 문화, 가치관 등이 서로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새로운 가치관, 사회적 규범, 국가의식 등을 심어주어야 했던 미국은 사회 개혁의 중요한 수단으로 유아교육 및 부모교육을 정책적으로 강화하였던 것이다.
가족의 중요함에 대한 인식의 끈을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놓지 않고, 더욱 단단히 하려는 노력을 해온 국가들로의 여행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기 위하여 1부에서는 우리나라의 현재적 상황부터 점검해 보고, 2부에서는 독일, 프랑스, 미국이 100년 전부터 체계적인 사회교육으로서의 부모교육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방법 등을 매우 간략하게 스케치하였다.
3부부터 6부까지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어보았을 고충, 의문,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등을 가상의 인물들을 대신 등장시켜 상황설정을 하고, 3개 국가의 과거 100여 년의 시간 속에서 그들이 실천해 본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마지막 7부에서는 ‘KACE 천안’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모교육을 해보면 좋겠다”라는 희망계획서가 선정되어 연간사업으로 진행된 사례들을 실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의 시민단체에서, 오로지 ‘부모들이 행복하게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마음을 모았던 실무자들, 지도자들, 임원진들 그리고 회원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Prologue _ 모델을 찾아 부모교육 선진국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제1부 _ 대한민국의 부모교육을 위한 서로의 입장 헤아려 보기
제2부 _ 국가별로 다르게 시작된 본격적인 부모교육의 이유와 방법
제3부 _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의 길은 부담스러운 길? : 육아가 행복하면 안 시켜도 더 낳을 텐데
제4부 _ 소외계층의 부모도 자조적 ‘문제해결 능력’ 키우기 : 가정방문 프로그램
제5부 _ 매체 활용 부모교육
제6부 _ 카페에서 부모교육을?
제7부 _ ‘KACE 천안’에서의 시도
Epilogue _ 부모교육을 넘어 가족문화교육 운동으로
참고자료